사람의 기억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 – 골목

세파(世波)에 시달리다 보니 변하는 거야.” 우암 하이퍼 마트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타지에서 청주로 넘어와 장사를 시작하다 보니 순진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변하였고, 30여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 동안 마을도 참 많이 바뀌었다. 대학교 앞 하숙집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원룸촌으로 바뀌었으며, 하숙집 주인들은 아파트를 찾아 다른 마을로 이주했다. 근처 대형 입시학원도 문을 닫고,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났음을 짐작케 하는 가게들도 많이 생겨났다. 어느덧, 가게의 주인은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우암동 골목에서 30~40년 넘은 노포(老舖)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대 앞 먹자골목만 가보아도, 70~80년대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이 결혼을 하고, 그들의 자녀가 다시 대학생이 되어 가게를 찾았다는 이야기와 노스텔지어 감성을 만끽하고, 유년시절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려온다. 여전히 기억 속의 향기와 맛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골목 안에는 시간과 기억, 사람들이 얽혀 다양한 삶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골목은 과거 이웃과 삶을 나누었던 네트워크의 장소였지만 도시화에 따라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편리한 생활권과 쾌적함이 좋은 주거의 기준이 되면서 함께하는 삶 보다는 개인에게 맞춰지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골목의 전경, 골목의 사람들, 골목에서의 일상적 생활 등 그동안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되어 기록화되지 못했던 것에 주목해야 주민(상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생업, 일터로서의 마을의 가게와 관공서(청원구청, 경찰서, 북부정류소 등), 대학가 주변 하숙, 원룸촌의 주거 모습, 먹자골목의 풍경, 떠나고 남겨진 풍경들 그리고 북부시장까지.. 골목을 따라 추억과 기억, 흔적을 담아내고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함께 나누던 공동체적 삶을 추적하였다.

서로 얽혀 있어 구불구불한 골목 공간 사이에는 작은 사물들이 존재하고,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 사이에 그들만의 가녀린 숨결이 있다. 골목은 좁으나 막힘이 없고, 집은 낡았으나 삶이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말과 같이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아직 온기가 있어 따뜻하다. 집에 있어야 할 책장, 선반 같은 것이 집 밖에 있기도 하고, 집 앞 길목을 마치 발코니 또는 거실과 같이 꾸며놓은 주민들도 있다. 아예 쉴 수 있게 의자까지 마련되어있기도 하다. 주인은 그 자리에 앉아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장소와 장소의 기능에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화분을 찾을 수 있다. 이 화분 자체가 작은 텃밭이 되기도 하고, 작은 양이지만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집의 안과 밖,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이라서 그런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다. 이 모든 것이 참 재미있고, 리드미컬하다.

사람의 기억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 골목은 때로는 좁고, 사소하고, 남루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소임을 맡고 있다. 그곳의 풍경은 소소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여전히 삶의 온기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