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진가 – 우암콜렉티브

국악할머니 : 이렇게 사진 찍어서 뭐해?

  • : 우리가 우암동을 기록하고 있어요. 우암동이라고 하면 북부시장도 되고, 우암초등학교, 덕벌초등학교도 되고, 넓잖아요.
  • : 청대 앞 다지? 오정목부터~
  • : 네~ 청주대학교 앞, 북부 정류장, 청주대학교 앞 먹자골목도 다니고 기록하고 있어요.
  • : 나 청주에서만 살았어. 세 살 먹어서 진천에서 온 거야. 아이 적에 와서 거기서 자라서, 우암동 여기서만 80년 넘게 살았어.
  • : 아, 그러셨구나. 할머니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 유..선.. 남

유선남 86세, 북부시장 내 점포 2호점 국악할머니의 이름이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안부를 묻고, 왜 가게 이름이 국악 할머니인지, 지금의 건강이 어떤지,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세 번, 네 번 시장을 다니며 얼굴을 익히다 보니 마음속 경계가 사라지고, 상인들은 그렇게 사진 속 피사체가 되어 주신다.

이렇게 우암동에서 만난 지은숙 사진가는 골목 풍경, 가게의 모습보다 그 속에 사는 사람에 집중한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 가게의 겉모습을 찍고, 가능하면 그 안의 내부의 모습을 찍고, 그다음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다. 그 사이 시장 앞 무성했던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되었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 가게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만났다. 간혹 진열대의 물건, 가게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허락하여도 자신의 사진을 못 찍게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모든 것이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모두, 각자 살아온 개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역사와 주변 환경, 인문학적 가치들이 숨어있었기에 우암콜렉티브는 단순히 오래되고 낡은 것을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넘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역사, 사회, 공동체를 기억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리가 처음 방문했던 중앙중학교 – 문화아파트 주변 주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낙후된 동네의 재개발을 희망한다. 과거의 모습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 만이 젊은이들이 지역을 찾고 활기를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다. 마을과 주민, 도시를 위해 어느 방향이 맞는다고 쉽게 결정할 수는 없지만, 혹시라도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는 ‘늙은 우암동’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기 위해 움직인 우리의 활동들이 미래로 넘어가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기를 바래본다.

사람의 기억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 – 골목

세파(世波)에 시달리다 보니 변하는 거야.” 우암 하이퍼 마트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타지에서 청주로 넘어와 장사를 시작하다 보니 순진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변하였고, 30여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 동안 마을도 참 많이 바뀌었다. 대학교 앞 하숙집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원룸촌으로 바뀌었으며, 하숙집 주인들은 아파트를 찾아 다른 마을로 이주했다. 근처 대형 입시학원도 문을 닫고,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났음을 짐작케 하는 가게들도 많이 생겨났다. 어느덧, 가게의 주인은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우암동 골목에서 30~40년 넘은 노포(老舖)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대 앞 먹자골목만 가보아도, 70~80년대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이 결혼을 하고, 그들의 자녀가 다시 대학생이 되어 가게를 찾았다는 이야기와 노스텔지어 감성을 만끽하고, 유년시절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려온다. 여전히 기억 속의 향기와 맛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골목 안에는 시간과 기억, 사람들이 얽혀 다양한 삶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골목은 과거 이웃과 삶을 나누었던 네트워크의 장소였지만 도시화에 따라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편리한 생활권과 쾌적함이 좋은 주거의 기준이 되면서 함께하는 삶 보다는 개인에게 맞춰지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골목의 전경, 골목의 사람들, 골목에서의 일상적 생활 등 그동안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되어 기록화되지 못했던 것에 주목해야 주민(상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생업, 일터로서의 마을의 가게와 관공서(청원구청, 경찰서, 북부정류소 등), 대학가 주변 하숙, 원룸촌의 주거 모습, 먹자골목의 풍경, 떠나고 남겨진 풍경들 그리고 북부시장까지.. 골목을 따라 추억과 기억, 흔적을 담아내고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함께 나누던 공동체적 삶을 추적하였다.

서로 얽혀 있어 구불구불한 골목 공간 사이에는 작은 사물들이 존재하고,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 사이에 그들만의 가녀린 숨결이 있다. 골목은 좁으나 막힘이 없고, 집은 낡았으나 삶이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말과 같이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아직 온기가 있어 따뜻하다. 집에 있어야 할 책장, 선반 같은 것이 집 밖에 있기도 하고, 집 앞 길목을 마치 발코니 또는 거실과 같이 꾸며놓은 주민들도 있다. 아예 쉴 수 있게 의자까지 마련되어있기도 하다. 주인은 그 자리에 앉아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장소와 장소의 기능에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화분을 찾을 수 있다. 이 화분 자체가 작은 텃밭이 되기도 하고, 작은 양이지만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집의 안과 밖,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이라서 그런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다. 이 모든 것이 참 재미있고, 리드미컬하다.

사람의 기억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 골목은 때로는 좁고, 사소하고, 남루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소임을 맡고 있다. 그곳의 풍경은 소소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여전히 삶의 온기를 전달하고 있다.

동네기록관 – 사진기록 아카이브의 중요성


동네기록관을 준비하며 청주시 사진기록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DB가 따로 정리가 되어있을까? 자발적으로 아카이빙 한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청주사진기록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았을 때, 처음 검색되는 것은 청주시청 홈페이지의 “사진으로 보는 역사기록집”이다. 이는 2008년 청주시 공보관실에서 발행된 198페이지의 PDF 파일로, 옛 사진으로 보는 청주의 모습과 도시의 변화, 사건, 사고, 기록 사진들을 엮어놓은 기록물이다.

그리고 비슷한 성격의 청주시지(靑州市誌)를 제외한 청주에 관련된 사진 기록 아카이브관련 자료는 찾아내기 힘들었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 작업은 물리적인 특성에 따라 종이와 전자, 시청각 기록물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 중 사진기록은 한 장으로 표현된 모든 것이 기록이라는 언어와 문자의 기능을 하며, 내용을 증명하기에 기록인 동시에 정보로서의 기능을 담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장면이라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작은 기록 활동들 속에는 개인의 일상과 역사 뿐만 아니라 장면에 담겨있는 시대와 장소, 공간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관습과 역사적 가치를 보여준다. 이는 개인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가치를 전해주며 증거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우암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픈 기록인 1993년 우암상가 가스폭발사고 관련 기록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아파트 건립 표지석이자 우암상가 아파트 추모비인 아래의 사진은 1995년도에 세워진 단순한 표지석이자 아픈 역사와 기억, 슬픔을 담고 있다. 이는 사실적 증거로서 기록인 동시에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정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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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청주우암상가아파트 추모 표지석 / 김용수

이처럼 개인에서 시작되는 기록 활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의 기억으로 재구성되고, 궁극적으로 기억의 사회화와 공적 영역화를 가능케 한다. 또한 이러한 사진자료의 공유는 이용자에게 종종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진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진의 보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동네기록관 – 우암콜렉티브의 활동을 통해 누군가는 지나간 사건 기록으로서 장소를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근대기 부흥했다 쇠락한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주관적 개입 없이, 사회적 기록으로서의 우암동의 모습에 집중하고,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이는 작은 활동이지만 마을의 소중한 역사와 잊혀져가는 공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웹 2.0 시대로 대표되는 지금, 워크숍을 통해 생산되는 사진 자료들이 기록, 생성, 수집, 활동, 보존에 이르는 과정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공유하여 개방과 활용이 가능한 사진기록 아카이브를 만드는 시도를 했음에 또 다른 의의가 있음을 밝힌다.

늙은(낡은) 우암동에서의 새로운 시작

1911년에서 1915년 사이에 청주 읍성이 허물어지면서 시작된 청주의 근대적 도시건축은 무심천변과 우암산 자락을 끼고 남북방향의 기다란 선형의 격자 도시를 이루게 된다. 청주의 원도심 영역은 남북으로 흐르고 있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동쪽에 우암산과 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체계, 시쪽의 운천공원 및 사직공원, 수곡동으로 이어지는 구릉체계로 둘러싸여 있다. 청주는 산자락과 물줄기가 만나는 평지에 성곽이 세워지면서 삶의 터전이 형성되었다.

현재의 우암동은 청주의 근대기에 조성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중 하나인 노후 주거지에 속한다. 1968년 청주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 남문로, 북문로, 중앙로 등 도심 북서부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고, 중앙로의 포화상태를 초래하게 되면서 청주시는 도시문제 해결을 위하여 제1지구, 무심천지구, 제2지구, 제3지구, 제4지구의 지구 지정을 통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중 우암동은 제1지구에 속하게 된다.

제 1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내덕동, 우암동일대를 대상으로 기존 시가지에 연접해 있는 북부지역의 농경지를 정리하여 신규 주택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이를 통해 교통난을 개선하기위한 보행 가로를 설치하여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고, 부정형인 토지를 정리하여 도로에 직접 면하도록 배치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하였다.

네모배기샘, 망골, 먹바위, 미나리광(미나리꽝, 미나리깡) 바깥덕벌, 비석거리, 서답골, 서답바위, 수반들(수안들), 아래밤고개, 음지뜸 등 지형적 형태와 능선에 따라 옛마을의 이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우암동은 전형적인 주거지역으로 유동인구가 적고 보수적 성향의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상당로, 향군로, 흥덕로가 교차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며, 최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구는 감소하고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2019년 11월 기록에 따르면 인구는 12,924명으로 남자 6539명, 여자 6385명이다. 면적은 1.75㎢이고, 27통 126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8년 기준 우암동의 주민 수는 14,645명에서 2011년 14,059명으로 감소하였고, 2019년 12,924명으로 인구수가 줄고 있다. 우암콜렉티브는 한 때는 부흥했지만, 쇠퇴되어 가고 있는 마을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청주의 대표 원도심인 우암동의 골목, 건물, 사람 등 이모저모를 촬영하고 DB구축을 시도한다.

손길이 덜 미친 골목 등에서 발견한 삶의 흔적들은 비록 낡고 보잘 것 없는 피사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어 훗날 다음 세대들에게 2020년의 우암동의 모습을 전해준다면 사진아카이브의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의 가치를 높이는 시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에 나온 이 말을 기억하고 싶다. 가장 낡은 것 속에 가장 새로운 것이 있다.”


1) 청주시 도시계획 변천사, 2015 12
2) 우암동 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